어린 시절 만화방에서 읽던 무협지 주인공이 자주 마시는 술들이 있다.
죽엽청, 검남춘, 오량액, 분주, 소홍주, 여아홍 그리고 돈 없을 때 싸게 먹는 화주까지 다양한 술들이 있었고 어느덧 백주를 즐기기 시작했을 때 그것들을 다 마시겠다는 버킷리스트가 생겼다.
죽엽청은 그 시작이었고, 어렴풋이 상상하며 기대한 느낌과는 달리 약재 기반이고 단 맛이 강한 술이었다.
유럽 술로 치자면 맛은 많이 다르지만 예거 마이스터, 버젤피터나 슈바인호그 같은 허브 리큐르 포지션이라고 할까.
물론 이제는 사실 죽엽청이 달달해서 오히려 여자들이 마시기 좋은 술이고, 여아홍은 말 그대로 딸의 결혼식용이라 따로 팔지않으며 다른 술 들도 그 시절 비교적 쉽게 접할 수 있는 이름들이어서 작가들에게 인용된 것이라는 걸 알지만, 그럼에도 불구하고 어린 시절의 추억을 되새겨주는 한잔이 왜 그리도 반가운지.
반드시 죽엽청을 사마셔야겠다는 생각이 들 정도로 아주 매력있는 맛은 아니지만 대나무와 한약재라는 베이스를 고려했을 때 생각보다 부담없고 재미있는 맛이다.
굳이 줄을 세워보자면 2만원 이하의 연태구냥이나 강소백, 공부가주, 양하대곡등의 쉽게 구할 수 있는 백주들과 비교하면 한 단계 높은 맛과 향이고, 그보다 비싼 양산향 마오타이나 해지람 정도의 포지션에는 조금 미치지 못하는 것 같다.
반드시 마셔봐야할 맛이냐고 물어본다면 아니라고 하겠지만, 기회가 된다면 마셔볼만하냐는 질문에는 확실히 그렇다고 대답하겠다.